1973년 11월 26일, 뉴욕 맨해튼의 한 클럽. 비가 갓 그친 거리에는 젖은 아스팔트 냄새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름조차 낯선 신인 밴드, ‘뉴욕 돌스(New York Dolls)’의 데뷔 무대를 보기 위해 젊은 음악 팬들과 언더그라운드 씬의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포크의 전설들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뉴욕의 공기는 전혀 다른 혁명의 냄새로 가득했다.   무대 조명이 켜지자, 5명의 멤버가 등장했다. 검붉은 립스틱, 번쩍이는 하이힐, 여성복을 연상시키는 의상. 그들의 룩은 록신의 금기를 가볍게 부수고 지나갔다. 기타리스트 조니 선더스(Johnny Thunders), 보컬 데이비드 요한슨(David Johansen). 그들은 흔들리고 거친 리프를 뿜으며 첫 곡을 내질렀다.음정은 정확하지 않았고, 연주는 다소 삐걱거렸지만, 공연장 안의 분위기는 뜨거운 기름을 끼얹은 듯 폭발했다. “이건 록이 아니라 폭탄이다.” 현장에서 취재하던 음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뉴욕 돌스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구조를 무시한 듯한 거친 연주, 리듬보다 태도에 집중한 보컬, 관습을 조롱하는 비주얼, 기존 록의 ‘멋’을 비틀어버린 파괴적 에너지, 이는 훗날 1970년대 후반 펑크록의 핵심 DNA가 된다. 더 램온즈, 텔레비전, 말콤 맥라렌을 거쳐 런던의 섹스 피스톨즈까지 —그 불씨는 이 작은 무대에서 처음 피어올랐다.동시대 영국에서는 닉 드레이크, 존 마틴 등 포크의 전설들이 감성적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일부 뮤지션들은 미국 투어 중 이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음악의 질서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포크의 섬세한 선율과는 정반대의, 원초적이고 반항적인 소리. 뉴욕 돌스는 바로 그 변화의 신호탄이었다.1973년 당시 언론은 그들을 ‘엉망진창’이라 평가했지만, 수년 뒤 음악 평론가들은 그날의 무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뉴욕 돌스의 데뷔 공연은, 펑크록이라는 거대한 쓰나미의 예고편이었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52년 전, 록의 지형도를 바꾼 작은 불꽃 하나가 맨해튼의 클럽에서 피어올랐다.    
최종편집: 2026-06-16 02: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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