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훗날 그는 마이크 하나로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며 ‘로큰롤 배달부(The Rock & Roll Delivery Man)’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의 이름은 앨런 프리드(Alan Freed).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로큰롤’이라는 단어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시간을 거슬러 1950년대 초 미국 사회는 인종 간 경계가 뚜렷했고, 흑인 음악은 백인 대중에게 쉽게 닿지 못했다. 바로 그 틈을 파고든 사람이 앨런 프리드였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리듬 앤 블루스(R&B)를 소개하며, 이 음악을 ‘로큰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명칭의 변화가 아니었다. 음악을 둘러싼 편견을 허무는 선언이자,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대변하는 언어였다.프리드는 라디오 스튜디오를 넘어 무대로 향했다. 1952년, 그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로큰롤 공연으로 평가받는 ‘무운 독 코로네이션 볼(Moondog Coronation Ball)’을 기획했다. 비록 과도한 관객 몰림으로 공연은 중단됐지만, 로큰롤이 폭발적인 대중성을 지녔음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사건이 됐다.그는 또한 척 베리, 리틀 리처드, 팻츠 도미노 등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를 백인 청중에게 소개하며 로큰롤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앨런 프리드의 방송은 음악 프로그램을 넘어 하나의 문화 운동이었고, 젊은이들의 열정과 자유를 실어 나르는 통로였다.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페이올라(payola)’ 스캔들로 방송계를 떠나야 했고, 1965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로큰롤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세대를 넘어 새로운 음악으로 변주되고 있다.1922년 12월 15일에 태어난 앨런 프리드. 그는 음악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음악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인물이었다. 로큰롤이 하나의 장르를 넘어 문화가 되기까지,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