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월 5일, 미국 애틀랜타. 영국 펑크록의 상징이자 가장 위험한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마침내 미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투어는 음악적 정복이 아닌, 혼돈과 붕괴의 서막으로 기록될 운명이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1977년 발표한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로 영국 사회를 뒤흔들며 펑크 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Anarchy in the U.K.”, “God Save the Queen” 같은 곡들은 기존 질서와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언이었고, 이들의 태도와 소리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분노와 허무를 대변했다. 이제 그 불길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1978년 1월 5일, 투어의 첫 무대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그레이트 사우스이스트 뮤직 홀(Great Southeast Music Hall). 밴드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미국 남부의 거칠고 보수적인 도시들을 투어 루트로 택했다. 이는 밴드 매니저 말콤 맥라렌이 의도한 “문화적 충돌 실험”이었다.무대 위의 섹스 피스톨즈는 예전보다 훨씬 불안정했다. 조니 로튼(Johnny Rotten, 본명 존 라이든)은 밴드와 미국 관객, 그리고 이 투어 자체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시드 비셔스(Sid Vicious)는 약물과 혼란 속에서 베이스 연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공연장은 열광과 야유, 폭력과 환호가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고, 펑크의 날것 같은 에너지는 점점 자기 파괴로 변해갔다.투어는 미국 남부와 중서부를 거쳐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 윈터랜드 볼룸(Winterland Ballroom)에서 마지막 공연을 맞는다. 그날 밤, 무대 위의 섹스 피스톨즈는 이미 밴드로서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뒤, 조니 로튼은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Ever get the feeling you’ve been cheated?” “속았다는 느낌, 받아본 적 없나?”이 한 문장은 펑크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 순간, 섹스 피스톨즈는 사실상 해체되었다.섹스 피스톨즈의 미국 투어는 성공적인 정복이 아니라, 펑크 정신의 자기 폭발이었다. 그러나 이 혼돈은 동시에 전설이 되었다. 이들이 남긴 것은 단 한 장의 정규 앨범과 수많은 스캔들, 그리고 “음악은 태도이며 저항이다”라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1978년 1월, 섹스 피스톨즈는 무너졌지만, 펑크는 오히려 이 순간부터 전 세계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영국의 거리에서 태어난 분노의 음악은, 미국 무대 위에서 산산이 부서지며 역사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잔해 위에서, 펑크는 하나의 영원한 문화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