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월 23일, 미국 록 음악계는 조용하지만 깊은 충격에 잠겼다. 브라스 록의 대명사, 시카고(Chicago). 그 화려한 혼 섹션 뒤에서 밴드의 심장을 연주하던 남자, 기타리스트 테리 캐스(Terry Kath)가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뜻밖에도 우발적인 총기 사고였다. 술에 취한 채 권총이 장전돼 있지 않다고 믿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순간 총성은 천재 기타리스트의 생을 멈췄다. 록 역사에서 가장 허망하고 비극적인 죽음 중 하나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시카고는 늘 ‘브라스 록’으로 기억된다. 트럼펫과 트롬본, 색소폰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사운드.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테리 캐스의 기타가 있었다.지미 헨드릭스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테리 캐스다.”그의 연주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거칠고 깊었으며 무엇보다 진짜였다. 블루스, 재즈, 사이키델릭 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카고 사운드에 뼈대를 심어준 인물. ‘25 or 6 to 4’, ‘I’m a Man’, ‘Introduction’에서 들려오는 폭발적인 기타 솔로는 오늘날에도 전설로 회자된다.대중은 시카고를 ‘혼 밴드’로 기억했지만, 멤버들 사이에서 테리 캐스는 음악적 중심이자 정신적 지주였다.그는 보컬, 기타, 작곡을 모두 소화하며 밴드의 록적 정체성을 붙들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시카고의 음악은 눈에 띄게 변했다. 더 부드럽고, 더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록 밴드로서의 날것 같은 에너지는 점점 옅어졌다. 그래서 많은 팬들은 말한다. “시카고는 그날 이후 다른 밴드가 되었다.”테리 캐스는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요란한 스캔들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기타는 록 음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과시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오직 음악으로 말하던 기타리스트. 1978년 1월 23일. 그날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록 음악이 가장 순수했던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린 날이었다.그리고 지금도, 시카고의 초창기 음반을 틀면 우리는 분명히 들을 수 있다.“그래, 그들에게도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최종편집: 2026-06-15 23: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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