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월 26일, 전후(戰後)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훗날 록 음악의 질서를 뒤흔들며, 기타라는 악기의 한계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반 헤일런(Eddie Van Halen).   반 헤일런의 음악 인생은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그의 운명은 미국에서 완성됐다. 가족은 196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이민자 소년은 음악만을 유일한 언어로 삼아 성장했다. 처음엔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으나, 형 알렉스가 드럼을 잡으면서 에디는 자연스럽게 기타를 손에 쥐게 된다. 이 선택이 록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1978년, 밴드 ‘Van Halen’의 데뷔 앨범이 세상에 등장하자 기타계는 충격에 빠졌다. 수록곡 〈Eruption〉은 단 1분 42초짜리 연주곡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운드는 기존 록 기타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했다. 양손을 지판 위에 올려 연주하는 ‘투 핸드 태핑(two-hand tapping)’ 기법은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 하나의 혁명이었다. 기타는 더 이상 리듬과 솔로를 오가는 도구가 아니라, 폭발적인 에너지의 중심 악기가 됐다.에디 반 헤일런의 위대함은 기술에만 있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즐거움과 자유를 품고 있었다. 계산된 완벽함보다 즉흥성과 감각을 택했고, 과시보다 음악 그 자체의 쾌감을 중시했다. 그래서 그의 기타는 차갑지 않았고, 언제나 살아 움직였다. 이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이 ‘기술 과시의 음악’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아낸 중요한 미학적 유산으로 평가된다.그가 만든 기타 사운드는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교과서가 됐다. 1980년대 록 기타리스트 중 반 헤일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흉내 내려는 시도는 많았으나 그를 대체한 이는 없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에디 반 헤일런의 연주는 기술 이전에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2020년,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기타는 여전히 울린다. 오늘날에도 록 기타의 기준점은 여전히 ‘반 헤일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1955년 1월 26일. 한 이민자 소년의 탄생은 훗날 전 세계 음악의 지형을 바꾸는 시작이었고, 기타는 그날 이후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최종편집: 2026-06-16 00: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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