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일, 봄기운이 막 고개를 들던 날. 김천시평화동에 자리한 김천희망학교강당에는 조금은 특별한 설렘이 가득했다. 전국의 학교들이 일제히 새 학년의 문을 여는 날이었지만, 이곳의 입학식은 단순한 학사 일정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배움의 시계를 다시 맞추는 어르신들의 용기, 그리고 지나온 세월을 껴안는 눈빛이 교차하는 또 하나의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입학식은 ‘옥계뮤지션’들의 통기타 선율로 문을 열었다. 잔잔한 기타 음은 마치 지난 세월을 어루만지듯 강당을 채웠고, 개식사와 국민의례, 학사보고, 신입생 선서, 학교장 인사말과 내빈 축사로 이어지는 순서는 엄숙하면서도 따뜻했다. 특히 신입생 대표의 선서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결석을 하지 않는다. 하나, 분리수거는 내가 먼저 한다. 하나, 칭찬을 많이 한다. 하나, 나는 미소 천사다. 하나, 백 세까지 공부한다. 하나, 내 꿈은 대학생이다.”짧고 단단한 문장 속에는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못할 것 같지? 나는 할 수 있다.”는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난 시대의 그늘을 넘어서는 선언이었다.   축전도 도착했다. 송언석국회의원은 “어르신들의 값진 경험과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이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며 입학을 축하했다. 그러나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상 위 인사들이 아니라, 교실에 나란히 앉은 신입생 한 분 한 분이었다.   김세호시의원은 “많은 행사장을 다녀봤지만 이곳이 가장 따뜻하다. 보약 한 첩을 먹고 가는 느낌”이라며 어르신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바로 여기 계신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라며 존경을 전했다.   이어 박복순시의원은 “늦은 배움이 아니라 용기 있는 도전”이라며 “지원이 필요하다면 의회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수와 축하 속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외면할 수 없다. 이곳에서 배우기 위해 어르신들은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굽어도, 수업 시간이 되면 한 걸음 한 걸음 교실로 향한다. 그 학구열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인간 승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도심에는 비어 있는 건물들이 적지 않다. 학생 수 감소로 텅 빈 교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배움의 의지가 가장 간절한 이들의 손을 행정과 정책이 충분히 잡아주고 있는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시와 의회, 도의회, 교육청, 더 나아가 국가 정책은 과연 이 절박한 교실을 얼마나 세심히 들여다보고 있는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르신들은 불평 대신 공책을 펼친다. 계단이 힘겨워도 수업은 거르지 않는다. 글자를 또박또박 적으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간다. 그 모습 앞에서 우리는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이제는 보다 실질적인 변화로 응답해야 할 때인가.   서명환 학교장의 인사말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울렸다. “늦은 배움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배움은 여러분 인생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세상에 다시 보여주는 일입니다.”라며 어르신들의 학구열에 큰 박수를 보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던 시절. 학교 대신 일터로, 교과서 대신 삶의 무게를 먼저 들어야 했던 세월.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높고 차가웠던 학교의 문턱. 글자 하나 몰라 남 앞에 서기를 망설이던 날들, 서류에 도장만 찍으며 돌아서야 했던 시간들이 이날만큼은 조용히 위로받았다.   초등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곳의 학생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초등·중학 과정을 거쳐 고등, 나아가 대학 과정까지 이어지는 배움의 길은 어르신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 되고 있다. 자녀와 손주들이 응원하는 가운데 부모 세대가 다시 학생이 되는 풍경.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품격이다.   입학식장에는 이런 문장이 울려 퍼졌다.“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참 멋지다.”그 말은 자녀들의 목소리이자, 우리가 드려야 할 존경의 인사다.봄은 나이로 오지 않는다. 용기로 온다.   2026년 3월 3일, 김천희망학교제5회 입학식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들의 배움에 얼마나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가를. 어르신들의 새로운 교복은 세월이었고, 새로운 교과서는 인생이었다. 그 봄날의 다짐처럼, 이들의 여정이 끝내 “나도 배웠다. 나도 해냈다.”라는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늦은 봄은 없다. 배움의 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피어나고 있다.    
최종편집: 2026-06-15 23: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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