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 9일, 미국 워싱턴주의 항구 도시 시애틀에서 시작된 거친 기타 사운드와 우울한 정서의 흐름, 이른바 ‘그런지(Grunge)’ 신(scene)에 상징적인 균열이 감지됐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를 잇는 교두보로 평가받던 밴드 사운드가든이 내부 갈등과 음악적 방향성 차이 속에서 해산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지역 음악계는 물론 전미 록 신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당시 사운드가든은 보컬 크리스 코넬의 폭발적인 음역과 기타리스트 킴 타일의 실험적 리프를 중심으로, 메탈과 펑크, 사이키델릭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축해왔다. 이들은 단순한 지역 밴드를 넘어, 점차 전국적 주목을 받으며 시애틀 사운드를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던 시점이었다.그러나 밴드 내부에서는 상업적 성공을 향한 방향과 본래의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유지하려는 입장이 첨예하게 충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잦은 투어와 제작 일정 속에서 누적된 피로, 그리고 레이블과의 관계 문제까지 겹치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이들의 해산은 단순히 한 밴드의 종말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지역에서는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등 동시대 밴드들이 부상하고 있었지만, 사운드가든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음악적 완성도를 지닌 ‘기둥’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해산은 시애틀 그런지 신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지역 음악 관계자는 “사운드가든은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시애틀 사운드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라며 “그들의 해산은 곧 이 장르 자체가 주류로 진입하기 전,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실제로 1990년 당시 그런지는 아직 전 세계적 열풍으로 번지기 전 단계였다. 그러나 그 거칠고도 진솔한 음악은 이미 청춘 세대의 불안과 분노를 대변하며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흐름 속에서 사운드가든의 해산은 ‘탄생과 동시에 흔들리는 장르’라는 아이러니를 남기게 됐다.한편,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그런지의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제기된다. 새로운 밴드들의 부상과 변화하는 음악 시장 속에서, 시애틀의 사운드는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것이다.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990년 4월 9일은 그런지 역사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날, 시애틀의 음울한 하늘 아래에서 울려 퍼지던 거친 기타 사운드는 잠시 멈췄고, 한 시대의 균열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