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젊음은 봄이고, 중년은 여름이며, 노년은 가을이라 말한다.그러나 누군가는 그 가을 끝자락에서도 다시 꽃을 피운다.
아흔넷의 나이에 대한민국 고등학교 과정 최고령 입학생이라는
새로운 기록 앞에 선 송건호 어르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대부분의 이들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하루의 노을을 바라볼 나이.
손주와 손녀의 재롱을 보며 조용한 황혼을 준비할 법한 연세에도
어르신은 또 한 번 가방을 메고 배움의 길 앞에 섰다.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초등학교나 중학교 과정과는 또 다르더라고… 어렵습니다. 머리아파요”짧게 내뱉은 한마디 속에는 세월의 무게와 두려움,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고등학교 과정은 기억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수많은 공식과 낯선 영어 단어,
시대와 함께 달라진 교육 방식은 젊은 학생들에게조차 쉽지 않은 도전이다.하지만 송건호 어르신은 그 어려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늙어가는 몸보다 먼저 늙어버린 마음을 경계하며,
배움이라는 이름의 긴 언덕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누군가는 “이 나이에 무엇을 더 배우려 하시느냐”고 묻는다.그러나 어르신의 도전은 단지 졸업장 하나를 위한 과정이 아니다.그것은 평생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배우고 싶었던 삶’에 대한 마지막 약속이며,
시대의 가난과 현실 속에서 접어야 했던 청춘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유로 스스로 가능성을 닫아버린다.하지만 송건호 어르신은 자신의 삶으로 조용히 말하고 있다.“배움에는 끝이 없고,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라고.취재를 하며 마주한 어르신의 깊은 한숨은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그 한숨은 힘겨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끝까지 해내고 싶다는 인간의 의지이기도 했다.주름진 손끝에는 세월이 새겨져 있었고,
그 눈빛 속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배움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아흔넷의 학생.그 이름은 이제 단순한 최고령 기록으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그는 우리 사회에 잊고 있던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당신은 지금 무엇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삶은 나이를 먹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배움을 멈추는 순간,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것이다.오늘도 송건호 어르신은 교과서를 펼친다.희미해진 시력으로 글자를 따라가고, 쉽지 않은 문제를 붙들며 긴 시간을 견뎌낸다.그 모습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다.그 자체가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가장 숭고한 선언이다.아흔넷의 도전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그리고 그 용기는, 젊음을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더 뜨겁고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