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삶의 획(劃), 길을 열다 – 서예와 함께한 여정경북 김천의 작은 산골에서 태어난 청악 이홍화 박사는 글씨와 인연을 맺은 순간부터 평생의 길이 정해진 듯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처음 잡은 붓은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우는 거울이었다. 그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회상했다.   “글자는 단순히 읽고 쓰는 기호가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내는 발자취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만든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예를 깊이 연구한 그는, 학문과 예술을 아우르는 길을 걸으며 전통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힘썼다. 박사 학위는 그저 학문적 성취의 상징이 아니라, 서예를 예술과 인문학으로 확장시키는 전환점이었다.전국 각지의 전시회, 강의, 제자 양성을 통해 그는 서예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삶의 철학으로 전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제자 교육의 길을 내려놓았다. 젊은 세대들이 깊은 정신을 배우려는 자세보다 단순한 ‘기술의 습득’에 머무르는 현실 앞에서, 그는 고뇌 끝에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서예는 기교가 아니라 마음공부다. 마음을 닦지 않고는 아무리 화려한 글씨도 껍데기에 불과하다.”오늘, 그는 더 이상 제자를 키우지 않는다. 대신 붓을 들고 홀로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 글자마다 자신의 철학을 새기고 있다. 그의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글씨는 이제 후학들에게 가르침 대신, 작품으로 남아 세대를 건너뛰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   2부. 파격의 붓끝, 걸레로 쓴 서예– 전통을 넘어선 실험과 사회적 반향청악 이홍화 박사가 ‘걸레 서예’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전통 서예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무는 것에 한계를 느낀 그는, “붓이 아니어도 마음의 글씨는 쓸 수 있다”는 신념으로 과감한 시도를 했다. 어느 날 손에 쥔 걸레로 획을 긋는 순간, 오히려 거칠고 자유로운 생명력이 살아남을 깨달은 것이다. 걸레는 서예 도구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억눌린 창조의 숨결을 터뜨리는 매개체가 되었고, 전통과 파격을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의 장을 열었다. 그의 걸레 서예 작품이 전시회에 공개되자 서예계는 충격에 빠졌다. ‘서예는 반드시 붓으로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이다. 당시 사회적 반향은 뜨거웠다. 일부 전통 서예가들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판했으나, 젊은 예술가들과 대중은 그 파격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발견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걸레가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예술은 어디서든 살아 숨 쉴 수 있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논란은 있었지만, 결국 걸레 서예는 한국 서예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실험으로 자리매김했다.“서예란 붓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슴 속에 있다. 걸레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인생 또한 어디서든 빛날 수 있다.” 3부. 청악의 유산, 작품으로 말하다– 서예와 인문학,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더 빠른 문자, 더 간편한 소통을 찾는다. 그러나 그 속도 속에서 한 글자를 쓰며 마음을 가다듬는 여유와 깊이는 점차 잊혀져 간다. 청악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글씨는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종이에 새겨진 획은 사라져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그는 서예를 인문학적 차원으로 확장하려 저술과 강연,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외부 활동을 멈추고 오직 작품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영원히 남을 길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작업 편수다. 현재까지 인터넷에 공개된 작품만 해도 무려 백만 장을 넘어섰으며, 이 기록은 세계 최고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는 지금도 하루 평균 30~40여 편의 작품을 써내려가며,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는 ‘기록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양적인 축적 속에서도 그의 글씨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의 서재 벽에는 늘 “筆은 心의 거울”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이 문구는 청악의 삶과 철학, 그리고 예술 세계를 온전히 대변한다. 이제 그의 가르침은 더 이상 교단 위의 말로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세월을 건너 미래 세대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글씨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대를 건너는 철학의 전달자가 되기 때문이다.“내가 제자를 통해 남길 수 없었던 것은, 작품이 대신 남길 것이다. 글자는 결국, 사람을 깨우는 힘이다.”청악 이홍화의 길은 결국 한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를 넘어, 붓끝으로 인간 정신세계를 밝힌 철학자의 길로 기억될 것이다. 청악의 하루하루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기록하는 순간이다. 그가 남긴 백만 장의 글씨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자, 인간 존재가 시간 위에 새기는 흔적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진정한 글 한 줄을 쓰는 일은 얼마나 드문가. 청악의 기록은 양의 축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증명이다. 그는 글씨로 말한다.“당신은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가? 삶을 남기는 글씨인가, 흔적 없는 낙서인가?” 결국 청악의 위대한 기록은 기네스북이라는 세계적 영예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철학적 성찰의 거울이다.    
최종편집: 2026-06-21 18: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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