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담배 연기와 시끄러운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인 공간에서,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섯 명의 젊은이가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The Farriss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을 준비 중이었지만, 훗날 세상은 그들을 INXS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친구의 친구거나, 우연히 맥주를 마시러 들른 손님들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 여섯 명은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흔들어놓겠다는 각오로 악기를 잡았다. 첫 곡의 기타 리프가 시작되자 작은 펍은 순간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마이클 허치언스(Michael Hutchence)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마이크를 움켜쥐고 몸을 흔들었다. 19세의 그는 아직 투박했지만,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이미 지니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작은 공간의 공기가 바뀌었다.당시 밴드는 아직 ‘The Farriss Brothers’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이 공연 이후 곧 ‘더 강렬한 이름이 필요하다’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들은 INXS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In Excess’, 즉 “한계를 초월한, 넘치는 에너지”를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이는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이날 공연은 그저 작은 펍에서의 라이브가 아니었다. 이후 INXS는 호주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1980년 정식 데뷔, 1982년 〈The One Thing〉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 진입, 1987년 앨범 〈Kick〉으로 세계 1,500만 장 이상 판매라는 신화를 쓴다.그리고 1990년대, INXS는 U2, Duran Duran과 함께 세계 3대 팝·록 밴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모든 영광은, 이날 “50명의 관객 앞에서의 첫 무대”에서 시작되었다.이 공연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단연 마이클 허치언스였다. 그의 감각적인 보컬, 관능적인 무대 매너, 그리고 청춘의 불안과 열정을 동시에 품은 눈빛은 밴드의 상징이 되었다. 훗날 그는 전 세계를 매료시킨 보컬리스트가 되지만, 그 시작은 이 작은 펍에서의 단 한 번의 무대였다.1979년 9월 1일, 시드니 교외의 허름한 펍에서 시작된 INXS의 첫 공연은 단순한 데뷔가 아니었다. 그날 울려 퍼진 기타 리프, 허치언스의 목소리, 그리고 50명의 숨죽인 청춘들이 만든 공기는 결국 1980~90년대 록 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 그들의 첫 무대를 떠올리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모든 전설은 작은 무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이다.    
최종편집: 2026-06-22 03: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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