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곧 그 지역의 품격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김천이 낳은 장군, 정승화. 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국가와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졌던 군인이었다.    192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정승화 장군은 6·25 전쟁에 소년 장교로 참전해 조국을 지켰다. 이후 군 현대화와 방위체계 정비, 한미연합사 체제 확립, 자주국방 강화에 기여하며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영광만으로 점철되지 않았다. 1979년 12월 12일,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12·12 군사반란에서 그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반란군에 의해 강제 연행되며 이등병으로 강등되면서 정치적인 수모를 겪었다.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역사는 그를 ‘군인의 원칙과 정직함을 지킨 사람’으로 점차 재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 반란의 주역들이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비극적 언어 속에서 권력을 장악했고, 한 시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오늘날 그들은 ‘민주주의 파괴자’, ‘군사반란의 주역’으로 기록되어, 국민 앞에 당당히 불리지 못한다.반면 정승화 장군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오히려 명예를 회복했다. 불의한 총구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권력의 일시적 성공보다 원칙과 명예가 더 길게 남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이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권력을 쥔 자들 가운데 여전히 “성공했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다.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결국 ‘잔당’으로, 반역의 역사로 기록될 뿐이다. 김천의 아들 정승화 장군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와 명예가 권력보다 길게 남는다는 진실을 되새기는 일이자, 김천이 스스로의 역사와 품격을 지켜내는 길이다.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비가내리는 9월 12일, 필자는 봉계초등학교 앞에 우뚝 서 있는 정승화 장군의 기념비 앞에서 김천의 자랑이요 김천의 태산과도 같은 그의 역사 앞에 머리를 숙였다. 김천 사람들에게서 그는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에 이 글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전해본다. 그를 알리고 김천의 자존심을 지키며 김천만의 장군을 위한 매년 추모식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최종편집: 2026-06-22 04:02:18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하트뉴스본사 : 김천시 양금로 194 상가1층 하트뉴스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북, 아00807 등록(발행)일자 : 2024년 9월 24일
발행인 : 이남주 편집인 : 이남주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남주 청탁방지담당관 : 이남주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남주 Tel : 010-3229-4836e-mail : leebada6@daum.net
Copyright 하트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