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 22일,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뜨거운 태양과 리듬이 숨 쉬는 그 땅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훗날 전 세계를 뒤흔든 ‘레게 히트메이커’, 섀기(Shaggy, 본명 오빌 리처드 버렐·Orville Richard Burrell)의 탄생이었다.
섀기가 태어난 1960년대 말의 자메이카는 문화적 격동기였다. 밥 말리(Bob Marley)로 대표되는 루츠 레게(Roots Reggae)가 막 피어나던 시기였고, 거리에는 사회적 메시지와 흑인 정체성을 노래하는 음악이 가득했다. 이 강렬한 리듬의 도시 속에서 자란 섀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레게 비트와 래그머핀(Raggamuffin)의 에너지를 체득했다.
1980년대 초,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며 또 다른 음악의 세례를 받았다. 힙합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브루클린 거리에서 섀기는 자메이카 사운드와 미국 스트리트 감성을 결합한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커버곡 ‘Oh Carolina’가 영국 차트를 강타하면서였다. 자메이카 전통 사운드와 현대적인 비트를 섞은 그 곡은 레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Boombastic’(1995), ‘It Wasn’t Me’(2000), ‘Angel’(2001)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섀기는 1990~2000년대를 대표하는 글로벌 레게 스타로 자리매김했다.그의 음악은 단순한 흥겨움 너머, 문화의 융합과 다양성의 상징이었다. 자메이카의 뿌리를 지키며 미국 대중음악의 중심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던 그는, ‘레게의 대중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이뤄낸 인물로 평가된다.오늘, 1968년 10월 22일로부터 57년이 흐른 지금도 섀기의 음악은 여전히 클럽과 거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그의 리듬은 단지 춤추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메이카의 영혼이 세상과 만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It wasn’t me”라며 웃던 그 남자 — 섀기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를 그 뜨거운 열대의 리듬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