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20일, 새벽의 공기가 유난히 축축하던 히스로 공항. ‘키ンク스(The Kinks)’의 중심이자 브리티시 록을 대표하는 송라이터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가 런던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이는 불과 수주 전 미국에서의 무대 활동을 중단하고 급히 영국으로 돌아왔던 그가 다시 한 번 복귀를 결심한 중요한 순간이었다.
당시 키ンク스는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주목받는 밴드였지만, 급격한 명성과 끊임없는 공연 일정은 레이 데이비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게 누적되며 여러 차례 음악 활동을 중단하거나 공연을 취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1970년 가을, 미국 투어 중 또다시 탈진 상태에 빠진 그는 결국 공연을 취소한 뒤 영국으로 긴급 귀국했다. 언론은 ‘해체설’과 ‘장기 활동 중단설’을 쏟아내며 키ンク스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팬들 역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그러나 11월 20일, 레이 데이비스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결심을 안고 다시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는 단순한 귀국이 아닌, 음악가로서 재도약을 향한 두 번째 비행이었다.그는 당시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나는 결국 음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래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이날 그의 귀국은 소속사와 밴드 멤버들에게도 새로운 국면을 의미했다. 미뤄졌던 녹음 작업이 재개되고, 1971년 이후 발표될 여러 명반의 밑그림이 이 시기를 전환점 삼아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970년 11월 20일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날이 아니다. 이는 레이 데이비스가 다시 음악적 책임과 창작의 자리로 돌아간 부활의 순간, 그리고 키ンク스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출발점이었다.이 선택은 훗날 『Muswell Hillbillies』(1971)와 같은 명반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브리티시 록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갖게 된다.영국 음악 전문지들은 그의 복귀를 ‘불안정했던 밴드의 중심축이 다시 자리 잡은 날’로 평가했고, 몇몇 평론가는 “만약 1970년 레이 데이비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70년대 키ンク스의 명반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